청소년상담

아이가 학교폭력을 당하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 왜 부모에게 말하지 않을까요

2026. 09. 12

아래는 가상 대화 장면입니다. 특정 내담자의 사례가 아니라, 일어날 법한 상황을 구성한 것입니다.

목요일 저녁, 세탁물을 정리하던 엄마가 아들 방문을 두드린다.

“체육복 어디 갔어?”

“잃어버렸어.”

“지난달에도 새로 샀잖아.”

“애들이 장난친 거야. 별거 아니야.”

“장난이면 돌려받아야지.”

“엄마, 나 숙제 해야 돼.”

문이 닫힌다. 엄마는 잠시 서 있다가 돌아선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방문이 닫히는 일이 잦아졌다. 그 나이가 다 그렇다고들 했다.

나흘 뒤 오후, 담임교사에게서 전화가 온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엄마는 방금 들은 말을 정리한다. 두 달. 처음이 아니었고, 체육복도 처음이 아니었다.

저녁에 아이가 돌아온다.

“오늘 선생님한테 전화 왔어.”

“…응.”

“왜 말 안 했어.”

“…”

“엄마가 아무것도 몰랐잖아. 진작 말했으면.”

“말하면 더 커지잖아.”

“뭐가 더 커져. 엄마가 해결하면 되는데.”

“엄마는 모르잖아.”

아이가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는 식탁에 그대로 앉아 있다. 두 달 동안 매일 저녁 이 식탁에 마주 앉아 있었다.

들여다보기

부모가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은 폭력 자체보다 침묵인 경우가 많습니다. 두 달이나 같은 집에 있었는데 한마디도 없었다는 사실이, 나중에는 사건보다 더 오래 남습니다. 이때 부모는 대개 그 침묵을 신뢰의 문제로 읽습니다. 나를 믿지 못했구나, 하고요.

그런데 아이 쪽에서 보면 이유는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인 자리에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수치심(shame)과 죄책감(guilt)을 구분합니다. 죄책감은 내가 한 행동에 붙고, 수치심은 나라는 존재 자체에 붙습니다. 반복해서 표적이 된 아이는 “왜 하필 나일까”라는 질문을 오래 붙들다가, 종종 자기 안에서 답을 찾아냅니다. 내가 만만해서, 내가 이상해서, 내가 그럴 만해서. 그 순간 그 일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나라서 일어난 일로 자리를 옮깁니다. 여기까지 오면 말한다는 것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도움을 청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감추고 싶은 수치스러운 부분을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여기에 부모와의 누적된 관계적 경험이 더해지면 침묵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만약 과거에 아이가 자신의 어려움을 넌지시 드러냈을 때, 대수롭지 않게 치부되었거나 “네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어떨까요? 아이는 자신의 마음이 온전히 수용받지 못할 것이라는 좌절감을 학습하게 됩니다. 내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방문을 닫고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체념해 버리는 것입니다.

나아가, 부모의 지극한 사랑과 돌봄 역시 역설적으로 침묵의 장막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챙기는지 알기에, 이 끔찍한 사실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걱정과 상처를 안길지 지레짐작합니다. 입을 열면 학교가 움직이고 반에서 자기 위치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 세상에서 가장 의지하는 부모가 무너지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아이 입장에서의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부모를 보호하고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이 위태로운 상황을 홀로 ‘관리’하고 있었던 결과입니다.

그래서 “왜 말 안 했어”라는 질문에 아이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합니다. 걱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아이에게는 한 번 더 자기 잘못을 묻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이 가족 안에서 다루기 어려운 이유는 분명합니다. 부모는 놀란 상태에서 빨리 알아내 해결하려 하고, 아이는 겹겹이 쌓인 마음을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했습니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장면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이럴 때는 두 사람 바깥에서 그 복잡한 마음의 이면을 안전하게 함께 봐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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