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가상 대화 장면입니다. 실제 내담자의 사례가 아니며,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상황입니다.
등장인물 민수(30대 직장인) / 동료
장면 긴 회의가 있던 날, 퇴근길 지하철

동료오늘 회의 길었죠.

민수네. 그런데 아까 제가 말한 부분이요,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동료어느 부분이요?

민수팀장님이 일정 물어보셨을 때요. 제가 대답을 좀 얼버무렸잖아요.

동료그랬나요.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민수다들 저를 보고 있었는데 말이 꼬였어요.

동료저는 그때 자료 넘기고 있어서 못 봤어요. 다들 별생각 없었을걸요.

민수그럴까요.

동료그럼요. 그리고 팀장님은 회의 끝나자마자 다른 회의 들어가셨어요.

민수아, 네. 그러셨겠네요.

동료(자리에서 일어서며) 저 여기서 내려요. 들어가세요.

그날 밤. 불을 끄고 눕는다. 낮의 그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그때 뭐라고 말했어야 했는지 문장을 다시 만들어 본다. 몇 번 고쳐 본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가 넘었다. 내일 아침에 팀장님을 어떤 표정으로 마주쳐야 할지 생각한다. 오늘 자리에 있던 사람이 여섯 명이었는데, 그중 몇 명이나 이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생각한다.

내일은 말을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눕는다.

들여다보기

어떤 자리가 끝난 뒤에도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반복해 되돌려 보는 일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사후반추(post-event processing)라고 부릅니다. 사회적 상황이 끝난 다음, 자기가 했던 말과 행동을 다시 살펴보며 점검하는 과정입니다.

되돌려 보면 볼수록 그 장면이 정확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시선이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자기초점적 주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은 상대가 실제로 어떤 표정이었는지가 아니라, 그때 내 목소리가 어땠는지, 손이 어디에 있었는지, 얼굴이 달아올랐는지 같은 자기 안의 감각입니다.

문제는 그 감각을 근거로 상대의 반응을 짐작한다는 데 있습니다. 내가 많이 긴장했으니 상대도 그것을 알아챘을 것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장면은 점점 더 불리한 쪽으로 정리됩니다.

되돌려 보는 시간이 대개 밤이라는 점도 영향을 줍니다. 낮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아 그 장면이 들어설 자리가 없지만, 하루가 끝나고 조용해지면 그제야 떠오릅니다. 하루 중 가장 지쳐 있고 판단이 너그럽지 않은 시간에 그 검토가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정리된 결론은 다음 자리로 이어집니다. 다음 회의에서는 조금 더 조심하게 되고, 조심한 만큼 말수가 줄고, 줄어든 말수는 다시 그날 밤에 검토할 거리가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 되돌려 보기는 대체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때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답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답이 나오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답을 찾는 쪽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시간을 들인 만큼 마음이 정리되기보다는, 다음 날 아침에 더 피로한 상태로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반복은 유난히 예민해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관계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밤에 혼자 작동한 결과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 과정은 혼자서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되돌려 보는 사람과 그 장면을 만든 사람이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근거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는, 그 장면을 바깥에서 함께 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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