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상담

명절 끝나고 늘 부부싸움을 합니다
— 시댁 이야기만 나오면 왜 편이 갈릴까요

2026. 09. 26

아래는 가상 대화 장면입니다. 특정 내담자의 사례가 아니라, 일어날 법한 상황을 구성한 것입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저녁, 고속도로는 막히고 차 안은 한동안 조용하다. 뒷좌석에서는 아이가 잠들어 있다. 조수석의 아내가 먼저 입을 연다.

“아까 어머님이 하신 말, 들었어?”

“무슨 말?”

“‘요즘 애들은 편하게 산다’고. 나 이틀 내내 부엌에만 있었는데.”

“엄마가 원래 말을 그렇게 해. 별 뜻 없어.”

“별 뜻 없는 말을 왜 매번 내가 들어야 해?”

“그럼 내가 뭐라고 해. 명절에 엄마랑 싸워?”

“싸우라는 게 아니잖아. 그 자리에서 한마디라도 해 주면 되잖아.”

“…당신은 왜 꼭 돌아가는 날 이 얘기를 해.”

아내는 창밖을 본다. 남편은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작년 설에도, 재작년 추석에도 비슷한 대화가 이 도로 위에서 오갔다. 남편은 억울하다. 어머니 앞에서 아내 편을 들면 어머니가 서운해하고, 아내 앞에서 어머니를 감싸면 아내가 서운해한다. 어느 쪽을 택해도 누군가는 다친다.

아내도 억울하다. 어머님의 한마디보다 더 아팠던 것은, 그 순간 남편이 아무 말 없이 TV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는다.

들여다보기

명절 뒤의 부부싸움은 대개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차 안에서 오가는 대화를 잘 들어 보면, 두 사람이 다투는 대상은 그 말 자체가 아닙니다. 아내가 묻고 있는 것은 “그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이고, 남편이 답하고 있는 것은 “나는 누구 편도 들 수 없다”입니다. 질문과 대답이 서로 다른 층에서 오가고 있습니다.

가족치료자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은 이런 장면을 이해하는 데 자기분화(differentiation of self)라는 개념을 썼습니다. 자기분화는 가족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 생각과 감정을 구분해 지킬 수 있는 정도를 말합니다. 분화가 낮다는 것이 가족과 사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이가 가까울수록 부모의 기분이 곧 내 기분이 되고, 부모의 서운함이 곧 내 책임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 상태로 결혼을 하면, 원가족과 배우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작은 긴장도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으로 다가옵니다. 아내가 바란 것은 어머니와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이틀 내내 부엌에서 애썼다”는 현실을 짚어주는 담담한 한마디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모의 불편한 기색을 견디기 어려운 남편에게는 그 정당한 사실 전달조차 평화를 깨뜨리는 공격처럼 두렵게 느껴집니다. 남편이 아무 말 없이 TV만 바라본 것은 어머니의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그 자리의 공기가 싸해지는 불안을 견딜 내적 힘이 없어 얼어붙은 것에 가깝습니다. 남편에게는 갈등을 피하려는 방어였지만, 아내에게는 “당신은 저쪽 사람”이라는 신호로 전해집니다.

차 안에서 아내의 감정을 받아주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내는 거실에서 받지 못한 보호를 돌아오는 길에라도 확인받고 싶지만, 남편은 “원래 그런 분이다”, “왜 꼭 돌아가는 날 이 얘기를 하느냐”며 대화를 차단합니다. 아내의 억울함과 속상함을 인정해 주는 순간, ‘그 부당한 상황에서 나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자신의 무능감과 죄책감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어머니를 감싸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자리에서 어쩔 줄 몰랐던 자기 자신을 변호하느라 아내의 감정을 밀어내게 됩니다.

이 패턴은 남편 한 사람만의 문제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불편한 말을 들은 그 자리에서는 감정을 삼키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을 통해 설움을 해결하려는 아내의 방식 또한 같은 구조의 다른 면입니다. 보웬은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을 제삼자를 끌어들여 해소하려는 움직임을 삼각관계(triangulation)라고 불렀습니다. 시댁이라는 관계 안에서 내 자리를 직접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남편이 나를 대신해 어머니를 통제하고 내 감정을 구원해 주는 대리인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침묵으로 불안을 피했다면, 아내는 남편의 태도에 매달리는 방식으로 관계의 불안을 다루고 있는 셈입니다.

명절마다 같은 싸움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부부는 매번 “어머님 말씀이 심했다”와 “별 뜻 없는 말이다”를 두고 다투지만, 그 아래에 있는 진짜 과제, 곧 두 사람 모두 불안을 다루지 못해 각자의 원가족과 새 가족 사이에서 경계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뤄지지 않은 채 다음 명절로 넘어갑니다. 다툼의 내용은 조금씩 바뀌어도 끝나는 방식은 늘 같습니다. 한 사람은 창밖을 보고, 한 사람은 핸들을 쥡니다.

이 구조는 당사자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싸움의 한가운데에서는 상대의 말투와 표정만 크게 보이고, 그 밑에 깔린 오래된 가족의 흐름은 배경으로 물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바깥에서 함께 봐 주는 사람이 있을 때, 반복되던 싸움이 실은 무엇을 두고 벌어지고 있었는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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