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가상 대화 장면입니다. 실제 상담 사례가 아닙니다.

점심시간, 회사 근처 식당.

A

오늘 발표 좋던데. 팀장님도 잘했다고 하시더라.

B

운이 좋았지. 자료가 원래 잘 정리돼 있어서.

A

그 자료 네가 3주 동안 만든 거잖아.

B

그래도 질문 들어왔을 때 한 번 막혔잖아. 그게 계속 걸려.

A

아무도 신경 안 썼어. 진짜야.

B

나는 신경 쓰여.

A

(웃으며) 넌 칭찬을 좀 그냥 받으면 안 되니.

B

그게… 이상하게 불편해. 좋아야 하는데 안 좋아. 잘했다는 말 들으면 다음엔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그때 못 하면 어떡하지 싶고.

A

다음도 잘하면 되지.

B

계속 잘할 수는 없잖아. 언젠가는 들킬 것 같아.

A

들켜? 뭘.

B

사실은 별거 아니라는 거.

A가 뭐라고 답하려다 만다. B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창밖을 본다.


들여다보기

칭찬이 편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칭찬이 마음에 도착하지 않아서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존감이 특정 조건에 묶여 있는 상태를 조건부 자존감(contingent self-worth)이라고 부릅니다. 자기 가치가 '나'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성과, 평가, 타인의 인정 같은 조건 위에 얹혀 있는 상태입니다. 조건이 충족되는 동안에는 괜찮아 보입니다. 오히려 성실하고 유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사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조금 다릅니다.

조건부 자존감을 가진 사람에게 칭찬은 보상이 아니라 유예에 가깝습니다. 이번은 통과했으니 다음 평가까지 시간이 생겼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칭찬을 들은 날 저녁이 더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기준선이 한 칸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정보가 한쪽으로만 흡수됩니다. 막혔던 질문 하나는 선명하게 남고, 3주간의 작업은 '원래 잘 정리돼 있던 자료'가 됩니다. 부정적인 정보는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자기 이미지와 맞아떨어져 쉽게 들어오고, 긍정적인 정보는 그 이미지와 충돌하기 때문에 어긋난 것으로 처리됩니다. 대화 속 B가 자신을 낮추는 건 예의를 차리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느껴져서일 수 있습니다.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조건 위에 얹힌 자존감은 쉬는 일을 어렵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는 기준을 충족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끝나자마자 다음 할 일을 찾게 되거나, 비어 있는 주말이 오히려 불편해지는 식입니다. 성실해 보이는 자리에 실은 멈추기 어려움이 놓여 있기도 합니다.

기준이 한 번 올라가면 잘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도 있습니다. 이번에 해낸 일은 금세 당연한 것이 되고, 다음 기준은 그 위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오래 애써온 사람일수록 자기가 얼마나 왔는지를 가늠하기 어려워집니다. 지나온 자리가 이미 기본값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준은 대개 오래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잘해야만 괜찮은 사람이 되었는지, 본인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오래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기준이라는 사실조차 인식되지 않습니다. 그저 당연한 것, 원래 그런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패턴은 혼자 들여다보기가 어렵습니다. 자기 안의 자를 자기 자신이 재기는 힘듭니다. 그 자가 어디서 왔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옆에서 함께 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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